[리뷰: 포테이토 지수 80%] 편견과 혐오를 응시하는 연상호 감독의 ‘얼굴’

태어나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임영규(권해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거듭난다. 임영규는 ‘못 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오해와 편견을 딛고 일어서며 ‘살아있는 기적’으로 불린다. 그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는, 성공의 반열에 오른 임영규를 돕던 아들 임동환(박정민)에게 어느 날, 40년 전 사라진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시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이 전해진다.
연상호 감독이 쓴 동명 만화가 원작인 ‘얼굴’은 임동환이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여정을 통해 사회가 부여한 ‘추함’이라는 낙인이 얼마나 잔혹하고 또 허무한지 드러내며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과 혐오를 거울처럼 비춘다.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세상을 본 적 없는 시각장애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씨를 새긴 도장을 만든다는 아이러니한 설정과 남편도 아들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정영희를 둘러싼 미스터리로 궁금증을 더한다. 무엇보다 정영희의 얼굴을 집요하리만큼 숨기며 “못생겼다”는 주변 사람들의 회상과 말로만 그녀의 모습을 추측하게 만들며 정영희가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건에 휘말렸는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장례식장에서 뜻밖에 만난 외가 친척들에게 영정 사진을 부탁한 임동환은 어머니의 얼굴에 관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아버지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던 PD 김수진(한지현)은 ‘대박 사건’의 기운을 감지하고, 임동환과 함께 정영희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얼굴’은 정영희의 이모들을 시작으로 과거 일했던 청계천 의류공장 동료와 재봉사, 공장 사장 등 다섯 개의 인터뷰 챕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부모 세대의 삶을 비춘다. 이 증언들은 정영희의 실제 모습을 조금씩 드러냄과 동시에 ‘못생긴’ 외모와 ‘어리숙한’ 행동으로 인해 사회적 편견 속에서 그녀가 견뎌야 했던 냉혹한 시선과 비극적인 삶을 조각조각 맞춰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정영희를 진정으로 이해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 연상호 감독이 ‘얼굴’ 던지는 질문
한 여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지만 ‘얼굴’은 충격적인 반전에 의존하지 않고 마지막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데 집중한다. 연상호 감독은 이 작품의 영감을 “두 사람의 극적인 대비”에서 찾았다. 임영규가 19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그 이면에는 그 시대의 증오와 편견을 떠안고 살아야 했던 정영희가 있다. 이렇듯 두 사람의 삶은 한 시대의 문화와 사회 전체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연상호 감독은 ‘얼굴’은 “‘성과에 집착하는 나 자신은 어디에서 비롯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면서 “이는 197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의 근대사가 무엇을 잃고, 착취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임영규의 서사나 동기가 다소 단편적으로 제시돼 그의 뒤틀리고 왜곡된 내면세계가 깊이 있게 와닿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불행한 가족사에서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는 시도 역시 한계를 드러낸다. 그렇지만 ‘얼굴’은 자신의 삶에서 추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긴다.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을 보는 재미는 분명하다. 박정민은 젊은 시절의 임영규과 아들 임동환을 동시에 연기하며 ‘아빠와 닮은 아들’이라는 극에 상징성을 더했다. 권해효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려 애쓰는 노년 예술가의 회환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신현빈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외모로 인해 배척당하고 다소 어눌하지만 때로는 고지식할 만큼 의로운 정영희의 내면을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섬세하게 표현해 여운을 남긴다.

감독 : 연상호 / 원작 : 그래픽노블 ‘얼굴’ / 출연 :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외 / 제작 : 와우포인트 / 배급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장르 : 미스터리, 드라마, 스릴러 / 개봉: 9월11일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3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